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변함없이 문학을 오롯이 사랑해 주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10대와 20대에 문학의 열병을 앓던 ‘열혈 문학도’라 할지라도, 세월 앞에서는 그 열정이 다소 손상되기 마련입니다. 열혈 청년 문학도도 밥과 물건과 제도로 이루어진 세상에 쉽게 굴복당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른이 되어 현실에 적응하며 살게 될수록 시나 소설을 읽는 일은 종종 시간을 허비하는 허망한 일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겪고 세상의 깊이를 알아갈수록, 아픔과 고통을 겪으면서 세상이 주는 무게감을 느껴 갈수록 오랫동안 보잘 것 없이 여겨지던 무용(無用)의 가치들이 인생에서 더 많은 위안과 위로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사람은 ‘밥’과 ‘판타지’라는 두 개의 주요한 연료를 태워 살아가게 만들어진 존재이지요. 사람은 현실적 가치인 밥과 함께, 현재의 가치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꿈을 꾸어야만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목표 지향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밥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끊임없이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새롭게 해석하며 되돌아보아야만 살아갈 기운을 얻게 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포유류가 지닌 매우 독특한 속성이지요.
이런 속성을 가진 동물이 사람일진대, 과연 ‘문학’을 그저 시간 때우는 데만 쓰이는, 가치 없는 이야기 혹은 가치 없는 노래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돈이나 물건으로 곧바로 치환되지 않아 쓸모없이 보이는 세상의 여러 가지 것들 안에 담겨진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혜안을 갖게 도와주는 일! 그것이 문학이 담당해야 할 진정한 본분이며 목표라는 사실은 화려한 수사로 거창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의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똥>에 등장하는 쓸모없어 보이는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피우게 하는 값지고 가치 있는 존재로 부활했듯이, 밥과 물건이 주인인 이 시대에서도 문학이 ‘강아지똥’처럼 세상을 움직이고 조종하는 숨겨진 권력이며 숨은 가치라는 사실을 젊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큐브스토리>는 젊은 독자들에게 순수 문학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장르 문학에 이르기까지 문학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단계적으로 전달해 주고 싶습니다. 또한 <이큐브스토리>는 문학과의 만남이 교과서에서만 간혹 마주치는 의무적이고 고통스런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자연스레 마주보며 나아가는 찬란한 만남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큐브스토리 문학 선집>을 기획하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김도엽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유독 남의 말이나 행동 따위를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기를 즐기는 등 숨은 장난을 잘 치는 아이였다. 더 나이가 먹어서는 B급 영화나 프로그레시브 락에 심취한 반항적인 청소년기를 보냈다. 풀리지 않은 실타래 같은 일상의 고백을 문학으로 풀기 시작하면서, 반항의 시기가 열망의 시기로 점차 바뀌어 갔다. 현재,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실험적인 글쓰기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담인
1984년, 오후 2시 45분 첫 울음, 보리차 묻은 손가락을 오물대며 눈물을 그치다. 흙을 밟고 걷는 것과 나무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고 이국을 방랑하며 낮의 얼굴과 밤바다를 보았다. 몇 번의 공모전 당선을 통해 작가로서 출사를 알렸으며 출판사를 거쳐 현재 기업 방송 작가로 일하고 있다.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글로 놀며 세상에 위트 있는 잽을 날리길 꿈꾼다.
김경
옛말에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면 가난하다”는 말이 있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글을 안 썼을 거라고 후회한 적이 있다. 담배와 술은 끊어도 이야기는 못 끊어 십 수 년째 장르의 구분 없이 끄적이고 있다. 읽을 땐 재미를 주고, 다 보고 나서는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찾아 밤낮으로 돌아다니는 한량이다.
김비안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분노에 찬 욕설 혹은 외로움에 지쳐 부른 노래에서 시작된 글쓰기가 조금씩 순화되어 적당한 형태를 이루면서부터 출판사 원고와 편집, 교정 일을 맡아하기 시작했다. 한참 뒤부터는 영화 만드는 재미에 빠져, 독립 영화의 작가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나 영화 작업에 지속적으로 매진할 예정이다.